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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프리미엄] 비대면계좌 비중 커지자 증권사들 1cm 영토전쟁

[마켓인사이드-48] 요즘 인터넷포털 사이트나 TV를 켜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고가 증권사 지점에 가지 않고도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소위 '비대면 증권계좌' 광고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계좌를 개설하는 건데 A회사 광고에서는 계좌 개설이 너무 쉬워 개그맨도 할 수 있을 정도라며 편의성을 강조하고, B사는 지점에 나갈 필요가 없으니 계좌 개설도 순식간에 가능하다며 속도를 앞세운다. C회사 광고는 더 노골적이다.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면 거래소 수수료도 공짜로 해주고 현금까지 캐시백, 심지어 백화점 상품권도 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주식에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한번 해볼까 생각이 들 정도다. 증권사들이 이처럼 비대면계좌 개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스마트폰 화면 속 영토 전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증권사 비대면계좌 개설이 허용된 건 지난해 2월 말부터. 은행 비대면계좌 개설은 이보다 빠른 2015년 말부터 이뤄졌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증권업계에서 은행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대면계좌가 늘어났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총 73만개의 비대면계좌가 개설됐는데 이 중 증권사 계좌 수가 약 60만개에 달했다. 증권사들이 은행보다 지점 수가 적은 탓이다. 은행은 굳이 비대면으로 계좌를 트지 않아도 근처 지점에 갈 수 있지만 요즘 서울시내 대단위 역세권이 아니고서는 증권사 지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심지어 지방에서는 대도시 거점 점포를 제외하고는 증권사 지점이 사라졌을 정도다. 그런데 이달 들어 인터넷전문은행이란 게 문을 열었다. 개점하자마자 손님들이 줄을 섰다.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개업 보름 만에 20만 고객을 돌파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지점이 없기 때문에 모두 비대면으로만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비대면계좌 개설 돌풍을 일으키자 증권사들도 서둘러 이 바람에 올라탔다. 사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어렵다는 절박함도 증권사들로 하여금 비대면계좌 개설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 깔리는 앱 크기는 기껏해야 가로세로 1센티도 안 된다. 고객들의 스마트폰 속에 이렇게 작은 앱 영토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속 1센티 영토전쟁이다. 비대면계좌 개설을 위해 거래수수료 면제부터 캐시백까지 증권사들이 들이는 마케팅 비용만 해도 언뜻 손해나는 장사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 안 하면 나중엔 더 많은 돈이 들 테니까. 일반인들이 많이 쓰는 금융 앱이라는 게 은행, 증권 합쳐서 두세 개 정도다.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선점당하고 나면 남의 회사 앱을 지우게 하고 우리 회사 앱을 깔아놔야 한다. 차라리 아무도 없었을 때 깃발을 꽂는 건 쉽지만 잘 쓰고 있던 남의 회사 깃발을 빼고 꽂으려면 지금보다 몇 배는 힘들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위 스위칭 코스트(전환비용)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플랫폼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증권사들의 문제는 지금부터다. 플랫폼을 선점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플랫폼을 선점하는 건 쉽지만 그걸 유지하는 게 더 힘들다는 얘기다. 당장 다음 판은 속도에서 경쟁이 벌어질 게 뻔하다. 월가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금융거래가 브로커와의 전화통화나 거래소 현장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요즘은 누가 더 빠른 통신수단을 갖고 있느냐에 승패가 엇갈린다. 단 몇 초, 아니 100분의 1초만에 수십억, 수천억 달러의 돈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이제 인공지능을 갖춘 최첨단 로봇 트레이더 거래는 기본이고 속도전에 돈을 쓰고 있다. 2009년 2억달러를 투자해 뉴욕과 시카고 사이에 1300㎞의 광케이블을 깔아놓은 헤지펀드회사 스프레드네트웍스의 일화는 유명하다. 연기금·뮤추얼펀드의 대형 거래를 알아차리자마자 재빨리 매매를 일으켜 수익을 챙기기 위해 이 정도 돈을 쏟아부은 것이다. 요즘에는 심지어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주파수 대역을 임차하고 해저광케이블을 깔아서라도 거래시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통신사나 방송사 수준이다. 비대면계좌로 고객을 끌어들인 국내 증권사들도 이런 속도전에 노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출처 : 2017. 04. 24 [한예경 증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