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 위기를 기회로 바꾼 승부사,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 201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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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열전-6] "미국은 문제 투성이다. 21세기가 됐는데도 전쟁에 수조 달러를 썼다. 그러면서도 국가 인프라 투자는 별로 하지 않고 있다. 20년 동안 대형 공항을 하나도 건설하지 않은 게 단적인 예다. 2010년 이후 학자금 대출은 2000억달러에서 9000억달러로 급증했다. 그 결과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직업 교육도 변변치 못해 젊은이들은 좌절하고 있다. 미국 실질가구 소득 평균값은 1999년에 비해 2.5%나 낮아졌고 중산층 비율도 줄었다. 의료비는 다른 선진국의 최소 2배에 달한다. 소득 격차는 심해졌고 계층 이동은 위축됐다. 왜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국가 기관, 지도자들에게 분노하고 있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만큼 정당이나 정파를 떠나 포괄적이고 조율된 정책이 필요하다. 좌절감과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하려면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지난 4일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쏟아낸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미국은 벼랑 끝에 몰릴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재무장관 물망에 올랐고 위기 감지 능력이 탁월한 월가의 승부사라는 점에서 전 세계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 편지에 주목했다.

다이먼 회장 발언이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배경에는 그가 걸어온 길이 자리잡고 있다. 성공과 실패, 승리와 좌절로 점철된 경험이 그를 위기관리 대가로 만들었다. 지나친 승부욕으로 비인간적 면모도 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해 그가 보여준 결단과 실행력, 통찰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는 그리스 이민자 출신 중산층 가정에 태어났다. 조부와 부친은 모두 주식 중개인이었다. 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MBA)을 나왔다. 학업을 마치고 그는 골드만삭스 등 월가의 금융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샌디 웨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 사장 비서를 선택했다. 웨일은 그의 부친이 다녔던 시어슨 최고경영자였다. 다이먼이 대학생 때 쓴 경영보고서를 우연히 읽어 본 웨일은 다이먼의 재능을 기억하고 있었다. 웨일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청년 다이먼에게는 승부수였다. 웨일은 보통 야심가가 아니었다. 다이먼 회장은 그런 웨일과 기질이 맞았다.

시어슨을 매각하며 아멕스 사장에 오른 웨일은 그후 여러 번의 인수·합병(M&A)을 통해 1998년 미국 최대 금융기업인 씨티그룹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웨일의 후계자로 자타가 공인했던 다이먼 회장 앞날도 탄탄대로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다이먼 회장이 이끌던 씨티그룹 자회사가 대규모 적자가 난 데다 웨일의 친딸 승진 문제로 두 사람은 대립했다. 그해 다이먼 회장은 돌연 해고 통보를 받았고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그의 생애에서 처음 맞은 시련이자 위기였다.

약 2년간 고민하고 방황한 끝에 다이먼 회장은 활동 지역을 시카고로 옮겼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미국 5위 은행 뱅크원의 최고경영자로 선임된 것이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웨일에게 배운 대로 그는 부실했던 뱅크원을 구조조정해 우량 금융사로 탈바꿈시켰다. 4년 후 JP모건은 뱅크원을 합병했고 다시 2년이 지나 다이먼 회장은 JP모건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꿰찼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2년 전인 2006년 일이었다. 8년 만에 최대 위기를 기회로 바꿔 더 큰 성취를 이뤘던 것이다. 그의 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수많은 금융회사가 문을 닫을 때 오히려 기회를 잡았다. 헐값에 나온 베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인수하며 JP모건의 덩치를 불렸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 덕이었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미리 감지하고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보수적 투자로 실탄을 보유하고 있었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JP모건은 고공행진했고 그는 월가의 황제로 등극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도 선정됐다.

2011년 그는 2300만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았지만 이듬해인 2012년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런던 고래' 사건이 그것이다. JP모건 런던지점에서 런던 고래라는 별명으로 파생상품을 거래하던 직원이 62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이다. 이 사건은 리스크 관리에서 경쟁력이 높았던 다이먼 회장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회사 내부뿐만 아니라 정부와 연기금 등 외부에서도 비판이 심했다. 그는 회장과 최고경영자를 겸하고 있는데 두 직책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다이먼 회장은 대규모 손실을 입고도 많은 이익을 내는 실력과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방어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JP모건을 떠나겠다며 주주들을 압박하는 전략을 펼쳤다. 결국 그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며 다시 한번 위기를 기회로 돌리는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다이먼 회장은 최근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JP모건의 미래 비전을 담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도입할 것이다. 아마존 프라임멤버 고객들이 받는 수준 만큼 사용하기 쉽고 싸며 자동화된 인공지능 로보어드바이저 자문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모든 금융회사들이 가려는 방향이지만 위기 승부사인 그가 강조했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출처 : 2017. 04. 10 [장박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