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광우·손현덕의 통쾌한 경제-5] 금년에 창립 30주년을 맞는 국민연금이 요즘 동네북 신세가 된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곤혹을 치르더니 이번에는 대우조선 채무조정의 키를 쥔 탓에 난감한 입장이지요. 국민연금기금이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 세계3대 연기금으로 커지면서 이곳저곳의 캐스팅보트를 가지다 보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연기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팩트 체크부터 하면 어떨까요.
지난 30년간 조성된 국민연금기금 총액은 약 700조원에 달하고 그중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가 440조원, 나머지 260조원은 돈을 굴려서 번 겁니다. 지금까지 연금급여로 지출된 140조원을 빼면 현재 자산 규모는 560조원입니다. 그럼 260조원이라는 막대한 수익은 어떻게 생겼나요? 1988~2016년 기간 중 5.9%의 연평균 수익률을 올렸고 자산별로는 채권 5.3%, 주식 6.3%, 대체투자(부동산·인프라 등) 9.0% 수익을 냈습니다. 이 수치는 위험(Risk)과 수익(Return) 간 상관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안전 채권의 수익률이 제일 낮았고 그다음 주식, 대체투자 순서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지요. 작년도 실적은 자산별 수익차별화가 더 커져 채권 2.0%, 주식 7.8%, 대체투자 9.9%였습니다.
국민연금기금은 앞으로 6년 후쯤 1000조원 규모로 커지고 2043년에 2500조원을 정점으로 줄어들어 2060년께 소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전망치는 연평균 수익률을 4~5% 수준으로 가정한 것이지요. 연 수익률이 가정치보다 1%포인트 높아지면 기금 소진 시기를 8년 늦추고, 반대로 1%포인트 떨어지면 고갈 시기는 5년 앞당겨져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구조입니다. 결국 기금 수익은 연금 지급 여력과 직결된 만큼 수익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죠.
수익률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자산배분'이고 저금리 시대의 수익성 개선은 '투자다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만 하더러도 국민연금기금의 자산 비중은 80% 이상 채권(대부분 국내 자산)에 집중됐는데, 현재 50%대로 지속적으로 낮추는 대신 주식과 대체투자 그리고 해외 부문으로 투자 범위를 확대한 것은 다행이고 지속되어야 할 과제죠. 기금 운용의 기본 원칙은 수익성과 안정성의 조화인데 1~2%대 금리의 국고채와 같은 안전 채권에 몰빵 했다간 거덜났겠지요.
양호한 투자 성과는 '전문성'과 함께 '적극성'을 요구합니다. 투자에 있어 리스크는 '회피' 대상이라기보다 '관리' 대상이고, 적극적 투자 다변화는 선택 아닌 필수죠. 물론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합니다. 왜 국민연금이 부실한 대우조선의 채권을 샀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수익률 개선을 위해 이자가 높은 회사채에도 일부 분산 투자하는 건 포트폴리오 전략상 무리는 아닙니다.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다보면 대박 날 때도, 쪽박 찰 때도 있지만 중요한 건 '평균' 점수죠. 개별 투자보다 전체를 봐야한다는 겁니다. 김연아 선수가 실수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트리플점프를 하는 건 성공할 때 가산점이 크기 때문이지요. 같은 이치입니다.
최근 검찰 조사와 지방 이전 등으로 기금본부 직원 사기는 떨어지고 복지부동한다고들 하는데 자신감 가지고 적극적으로 뛸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조성해야 합니다. 기금 경쟁력은 무엇보다 전문성 강화와 독립성 확보에 달려 있습니다. 외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투자 원칙에 입각해 소신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죠. 진짜 필요한 대선 공약은 공공투자 프로젝트에 2200만 가입자가 주인인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한다는 게 아니라 기금 운용에 정부나 정치권 개입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 아닐까요. 국민연금이 동네북이 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출처 : 2017. 04. 04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국민연금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