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 [손현덕의 생각] 경제성장의 공식

  • 2017.04.20

List

  • 첨부파일
  • 조회수 4005

[손현덕의 생각-25] 지금 우리나라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나는 주저 없이 성장이라고 말한다. 경제가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걸 통틀어 대한민국에서 지금 중요한 것 단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해도 나는 성장이라고 말할 것이다.

성장을 해야 국민소득이 올라간다.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으나 그래도 성장을 해야 일자리가 생긴다. 성장을 하지 못하면 일자리는 반드시 줄어든다. 성장을 해야 세금이 많이 걷힌다. 그걸로 정부의 재정을 늘리고 복지에도 돈을 쓸 수 있다. 성장을 못하면 가장 먼저 서민들이 타격을 받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양극화는 심화된다. 나눠 먹을 게 줄어들면 싸움이 잦아지는 이치다. 대한민국 경제, 사회가 직면한 현재의 총체적 위기의 핵심 원인은 바로 성장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대선 후보들이 다들 외쳐대는 불공정의 뿌리도 기실 저성장에 있다.

이렇게 말하면 반론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행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잇달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수출이 호조세를 보여서 그렇지 내수는 여전히 얼음장 같다. 그리고 성장을 볼 때 중요한 것은 경기순환적이냐 구조적이냐를 봐야 한다. 경기순환 사이클 상으로 잠시 성장률이 올라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구조적으로 성장잠재력이 훼손된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이런 점에 대해 심각성을 인식하는 국민은 의외로 많지 않다. 어느 순간 대한민국에서 성장에 대한 담론이 사라졌다. 성장은 일종의 공기 같은 것이다. 중요하긴 한데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른다. 정치권을 보면 다들 성장보다는 불공정을 말한다. 불공정은 비유하자면 일종의 날강도다. 그래서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치권이 물론 성장을 말하긴 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말하기도 하고 포용적 성장을 말하기도 한다(제대로 알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발 더 들어가면 '어떻게'가 없다. 또 있다 한들 그게 유효한 전략인지 의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다. 방법론적으로 공정이나 복지는 쉽지만 성장은 어렵다. 골 아프다. 그러니 정치권에선 인기가 없다.

먼저 한국 경제가 얼마나 성장을 못하는지 보자.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세 가지만 지적해보자. 첫째, 성장률 전망이 상향조정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예상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다. 정부 목표를 2%대로 잡은 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잠재성장률(약 3.0%)도 밑도는 수치이다. 두 번째, 90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매년 성장률이 얼추 계산해서 0.2%포인트씩 감소했다. 5년마다 1%포인트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15년 넘게 성장률이 슬금슬금 줄어들었는데 앞으로 추세가 반등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세 번째로 설명하려고 하는 잠재성장률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잠재성장률이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일단 정의(定義)는 아주 간단하다. 한 나라가 동원 가능한 생산요소를 투입해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 없이 최대로 이뤄낼 수 있는 성장률. 이게 잠재성장률의 정의다. 성장을 하려면 생산요소를 투입해야 하는데 그게 노동과 자본이다. 그래서 노동 한 단위를 투입해 얻는 산출량의 증가, 그리고 자본 한 단위를 투입해 얻는 산출량의 증가, 이런 식으로 계산해 잠재성장률을 도출한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 투입할 노동이 갈수록 줄어들고 올해부터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럴 경우 노동의 투입으로 인한 성장은 마이너스로 전환된다. 그 다음은 자본인데 이건 기업이 투자를 해야 늘어난다. 이와 관련해 경제학자들은 자본의 심화(capital deepening)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노동 투입에 대한 자본 투입의 비율을 높임으로서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이 역시 우리나라는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자본의 투입으로 인한 경제성장이 별로 없다는 결론.

잠재성장률보다 왜 실질성장률이 밑도느냐? 정부가 도대체 경제운용을 얼마나 잘 못하면 그런 일이 벌어지느냐고 따지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 통상 불황 때는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아래로 나오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건 경제성장률은 어쩔 수 없이 잠재성장률 근처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실력대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울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계산한 바에 따르면 2026년 이후엔 1%대다.

잠재성장률을 측정하는 데 한 가지 빠뜨린 게 있다. 노동, 자본,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이란 거다. 이는 같은 양의 노동과 자본을 투입해도 생산성이 높으면 성장을 더 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걸 제대로 계산하는 경제학자는 없다. 일종의 블랙박스 같은 것이다. 관찰이 잘 안된다. 사후적으로 계산해보니 생산성 증가에 의해 성장률이 이렇게 나왔구나 정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계산하는 건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고 정부나 한국은행이 계산해서 발표하는 숫자 자체도 애매한 구석이 많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지는 다 안다. 같은 노동을 투입하더라도 얼마나 시장에 효율적으로 노동력이 배치되느냐에 따라 성장은 차이가 난다. 성장이 잘 안되는 산업에 잔뜩 인력이 모이고 성장이 높은 산업에는 제대로 인력이 안가면 그게 생산성 하락이다. 자본도 마찬가지. 소위 좀비기업에 돈이 지원되고 성장산업에 돈이 안가면 그것도 생산성 하락이다. 쌀농사 짓는 데는 정부가 잔뜩 보조금을 주고, 돈을 벌 수 있는 의료산업 같은 건 규제로 막는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좀비기업 연명시키고 실업대란 걱정된다며 사양산업을 보살핀다. 이런 예는 한도 끝도 없이 들 수 있다. 모두 다 대한민국 성장 안하겠다는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그런 길로 가고 있다.

출처 : 2017. 04. 19 [손현덕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