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EO열전-53] 마티아스 뮐러 폭스바겐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리더 역할을 되찾기 위해서다. 2015년 디젤게이트로 망가졌던 폭스바겐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포부도 깔려 있다. 그의 무기는 전기차다. 2025년까지 폭스바겐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4대 중 1대를 전기차로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뮐러 회장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앞으로 5년 안에 전기차 공장을 16개로 늘리고 연간 30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출 것이다. 지난해 폭스바겐 전기차 생산량이 4만3000대에 그쳤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삼성SDI와 LG화학 등 배터리 제조업체들과 파트너십도 확대할 방침이다."
디젤 차량 연비 조작 사건이 터지기 전만 해도 폭스바겐은 전기차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크린 디젤'이라는 없던 말까지 만들어내며 디젤 차량에 역량을 집중했다. 포스바겐이 마케팅 전략으로 디젤을 친환경 자동차라고 광고하는 바람에 디젤 엔진이 정말로 환경친화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디젤게이트가 발생하면서 폭스바겐은 사기꾼 기업으로 전락했고, 오명을 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폭스바겐을 불신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으니 뮐러 회장은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전기차'였다.
전기차를 폭스바겐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공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열린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도 그는 비슷한 비전을 밝힌 바 있다. 2025년까지 전기차 모델 80종을 출시한다는 '로드맵E'다. 배터리 구매를 위해 200억유로를 할애할 것이라는 투자 계획도 내놓았다. 이에 앞서 2016년 발표된 '전략2025'에도 전기차로 사업 중심을 옮기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친환경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그의 신념은 디젤게이트를 겪으면서 확고해졌다. 폭스바겐이 여전히 많은 디젤 차량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디젤 차량 보조금 폐지를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독일의 한 언론과 인터뷰하며 나온 말이다. "정부는 디젤 차량에 보조금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 돈을 친환경 자동차 기술를 발전시키는 데 쓰는 것이 의미가 있다."
뮐러 회장은 폭스바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20대 초반부터 폭스바겐 계열인 아우디에서 공구 제작자로 일했다. 1953년생이니 40년 이상을 폭스바겐과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뮌헨대에서 컴퓨터 공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아우디 전산사업부와 제품관리부 등에서 일했다. 그는 2010년 포르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며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디젤게이트로 폭스바겐이 최대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가 적임자로 거론된 것도 포르쉐를 맡고 나서 보여준 능력 덕이 컸다.
그는 폭스바겐 수장에 오르자마자 이렇게 선언했다. "사태를 제대로 파악해 투명하게 처리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 그는 이 말을 성실하게 이행했다. 피해 고객들을 파악하고 보상에 나섰다.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만족스러운 보상을 하지 않았지만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는 보상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법인을 보강해 철저하게 원인을 파악했다. 이와 더불어 사업부·지역별로 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방식으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특히 고질병이었던 상명하달 방식의 의사소통과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기업 문화를 개혁했다. 조직적인 연비 조작의 원인이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고 진단했던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그가 신경 썼던 것은 내실 경영과 미래 비전 수립이다. 디젤게이트 이후에도 판매를 늘리기 위해 그는 많은 조치를 취했다. 물론 전기차에 대한 연구에도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했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그는 디젤게이트에도 불구하고 디젤 차량을 계속 판매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설명했다. "디젤 엔진은 전기차로 가는 다리다. 전기차 투자 재원을 마련하려면 디젤 차량을 많이 판매해야 한다. 디젤 사태가 많은 교훈을 주었다. 더 이상 문제는 없을 것이다."
뮐러 회장 리더십에 힘입어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에도 가파른 성장을 이어갔다. 2016년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해 전 세계 시장에서 1100만대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보이며 최대 실적을 올렸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2307억유로와 138억유로에 달했다. 엄청난 벌금을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다.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며 그는 "우리는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왔다"고 선언했는데 이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그의 좌우명 중 하나는 위기를 잘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가치를 이어가려면 돌방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디젤게이트를 극복하며 그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입력 : 2018.03.26 [장박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