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사이드-153] 룩셈부르크? 크라잉넛의 노래 제목? 혹은 역사 시간에 배운 베네룩스 3국 중 하나?(나머지는 뭐였더라? 벨기에, 네덜란드였군!) 유럽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과 접해 있다는데 어찌 그리 접경 국가가 많은 건지, 그럼 나라 크기가 엄청 큰 건가?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요. 출장 가기 전까지 상황입니다.
막상 공항에 내렸더니 솔직히 '에게?' 싶었습니다. 나라의 관문이라는 국제공항 크기는 우리로 치면 제주공항보다도 작았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며칠 묵으며 보니 이 나라 장난 아닙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로 잘살고요. 국민 대부분은 룩셈부르크어, 독일어, 프랑스어는 기본, 영어는 선택이라 할 정도로 언어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국민 중 외국인 비중이 47%, 170개국에서 왔을 정도로 국제적입니다.
2017년 한국이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고 있다면 이 나라는 법인세를 29%에서 지난해 26%까지 내리고 있고 중소기업 법인세율은 22%까지 떨어뜨리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유럽연합(EU) 최하 부가가치세(17%)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인근 국가 사람들이 술, 자동차 기름 등은 여기서 사가기도 한다네요.
무엇보다 이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들은 부자입니다. 한 언론에서는 룩셈부르크에 사는 1300억원 상당 자산 보유자만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하기도 하고요. 실제 로스차일드, UBS, bil 같은 부자 자산관리(WM) 전문 은행도 수십 개랍니다.
한국 교민요?
100명 정도로 아직은 많지 않다고 해요. 그런데 재밌는 건 여기 사는 투자자 중 한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이들이 꽤 된다는 겁니다. 특히 한국의 유망 스타트업, 벤처에 투자하려 한다는데요. 양국 국민끼리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투자라니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어디 가나 '다리'가 있듯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이는 있었습니다. 룩셈부르크 소재 경영컨설팅 회사 '룩스코(LUXKO)'의 박승은 대표입니다. 박 대표는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한 후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유학(MBA)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2006년쯤 한 한국 중소기업의 유럽 법인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태면서 룩셈부르크에 정착했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유럽 시장 영업을 시작할 때 룩셈부르크를 통하면 기업을 설립하기도 쉽고 EU 시장을 원활하게 공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답니다. 더불어 유럽 거래처를 확보하고 EU 내 각국의 시장 상황도 이해하게 됐답니다. 약 10년간 현지 경험이 이렇게 쌓였습니다. 입소문이 나자 여러 한국 중소기업이 유럽 진출을 도와달라고 몰렸다는군요. 결국 지난해 5월부터 아예 컨설팅 회사를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답니다. 박 대표 소개는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박 대표에게 소개받은 현지 투자자를 소개합니다. 혹시 스카이프 아시나요? 컴퓨터 영상통신으로 전 세계 어디,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회사인데요. 2006년 이베이에 26억달러(약 3조원)에 매각하면서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이름이 남았지요. 이 스카이프의 창업 멤버로 매각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근무했던 이가 바로 마이클 잭슨 맹그로브캐피털 파트너입니다. 회사 매각액이 상당했던 만큼 주요 임원이었던 그 역시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잖은 금액을 엑시트(자금 회수)했답니다.
원래 그는 런던대에서 통신 부문을 전공하고 정부 일을 하다 스웨덴 통신사 텔레투(Tele2)에 합류하면서 본격 민간 회사 경력을 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IP 기반의 원거리 원격 통신 시스템에 눈을 뜨며 스카이프 창업 멤버로 합류할 수 있었다는군요.
스카이프 매각 후에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런던대 MBA 객원교수로 교편을 잡는가 하면 볼보, 악사 보험사 사외이사로도 활동 중입니다. 잭슨이 소속돼 있는 맹그로브캐피털은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큰 벤처캐피털(VC)로, 이곳에서 VC 투자자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약 100개 기업에 투자하거나 운영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는 최근 3~4년 사이 블록체인 기술에 꽂혔답니다. 그래서 그는 현지 스타트업 VNX 투자는 물론 블록체인닷컴이라는 회사에서는 직접 이사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블록체인닷컴의 주요 사업모델은 전자 지갑을 스마트폰에 내장하고 송금도 하는 거라네요. 사용자 수는 32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세가 뚜렷하답니다.
"닷컴 창업 열풍 시절의 중심에 있어봤기 때문에 신기술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처음 인터넷이 나왔을 때 빨리,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팀이 결국 위대한 기업을 만들더군요. 블록체인 기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장은 뚜렷한 회사나 사업모델이 안 나오고 있다 해도 이런 잠복기를 거쳐야 결국 위대한 기업이 탄생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보기술 IT 강국인 한국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요."
"맞습니다."

이런 의견에 맞장구치는 이가 등장했습니다. 박 대표가 또 다른 투자자라면서 소개해준 이였습니다. 송원석. 한국 이름이었는데요. 실제로는 스웨덴 동포 2세로 한국말보다는 스웨덴어, 영어에 더 익숙한 사실상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는 스웨덴 KTH공대(KTH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를 졸업한 후 언론사 디지털 전환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 1997년 메트로 본사 COO에 오를 정도로 고속 승진했답니다. 더불어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를 키웠습니다. 성공적인 IPO(상장) 과정을 지켜본 후 통신사 텔레투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잭슨과 인연을 맺었다네요. 두 사람은 당시 통신사의 지위, 이들이 만들어낸 생태계 속에서 각종 벤처회사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때로는 투자도 하고 때로는 함께 자회사를 키우는 과정에서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하네요.
한국과의 인연도 있었습니다. 통화 연결음에 노래를 넣은 서비스는 사실 한국이 제일 먼저 했다는데요. 이 사업모델을 벤치마킹해 유럽 시장에 퍼뜨린 이가 송씨였답니다. 송씨가 텔레투의 관계사 밀리콤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는데요. 그는 모바일 결제서비스 부문 부사장으로 음원 서비스 결제 등 다양한 업무를 진두지휘하는 과정에서 콘텐츠를 돈으로 사고 결제하는 사업모델을 크게 키웠답니다.
송씨는 "그런 사업모델이 지금으로 치면 핀테크였다"면서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상호원장, 구매이력 추적 가능한 기술 등으로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지금 그는 독립적인 투자자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유럽 부호 가문의 투자 자문을 하는 위치에 있다고 하네요. 이런 과정에서 예전의 전우(?) 잭슨과 다시 접점이 생겨난 겁니다. '한국 벤처 투자 타진'이라는 주제에서 말이죠.
박 대표는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과 인연이 됐을까요. 유럽의 한 중소기업 박람회에서 박 대표와 송씨가 처음 알게 됐고 한국 기업의 여러 유럽 시장 진출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조언 그룹으로 잭슨까지 연결됐다고 하네요. 박 대표는 최근 이들을 룩스코 고문으로 영입해 실질적인 해외 진출 조언자 겸 투자 유치 전반에 대해 지원할 수 있는 구도를 갖췄다고 소개합니다.
"코트라·무역협회와도 연결고리가 있어 국내 중소기업이 유럽 진출을 하려 할 때 룩셈부르크를 교두보로 삼을 수 있도록 회사를 키울 겁니다. 한국에는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현지에서 판로 개척은 물론 투자 유치, 자금 조달 등 다양한 지원을 원스톱으로 할 수 있게 해 성공 사례를 계속 쌓아가는 게 목표입니다."
한국과 룩셈부르크. 어찌 보면 별 인연이 없어 보이지만 민간기업 교류만으로도 적잖은 기회를 잡는 이들이 점차 많아질 듯합니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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