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록체인 알파&오메가-44] 탈중앙화. 블록체인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단어다. 탈중앙화는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로 거론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기존 산업 구조에서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지나치게 크다며 그들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간 관리자의 권한을 축소함으로써 참여자 간 공정한 수익 분배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 연세대 블록체인 연구회는 왓챠와의 산업협력을 진행하며 콘텐츠 사업에 블록체인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봤다.
◆ 토큰 이코노미로 중간 관리자 역할을 줄일 수 있다
콘텐츠 산업은 콘텐츠 생산자·유통업자·소비자로 구성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유통업자가 과도한 수익을 가져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음악·방송·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츠 생산자에게 이익을 돌려주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영상 부문의 콘텐토스(Cotentos), 음악 부문의 이뮤직(eMusic), 스포츠 라이브 방송 부문의 마이티비체인(myTVchain) 등이다. 이들은 소비자가 직접 콘텐츠를 평가하도록 한 후, 이 결과를 바탕으로 콘텐츠 제작자에게 보상으로 돌려준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젝트는 한 가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정작 소비자는 콘텐츠 생산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유통업자의 몫을 콘텐츠 생산자에게 준다고 해서 달라지는 점은 없다. 설령 기존의 가격결정 과정이 완전히 투명하지 못하고, 유통업자가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소비자가 인지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기에는 막연한 면이 있다.
이에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개인 소비자에게 실질적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려 한다. 토큰 이코노미 설계를 통해서다. 토큰 이코노미는 각 참가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더라도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드는 토큰 중심의 경제 체제다. 콘텐츠 플랫폼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경우, 코인은 지불수단(유틸리티 토큰)으로 사용된다. 유틸리티 토큰은 블록체인 플랫폼 내에서 지불 수단으로 사용되나 때때로 소비자 기여에 대한 보상 용도로 지급되기도 한다. 일례로 블록체인 영상 플랫폼 콘텐토스(Contentos)는 디앱 내 엔터테인먼트를 이용할 경우 이용자에게 토큰을 보상으로 지급한다. 이 토큰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교환할 수 있다
토큰 이코노미를 잘 설계하면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중요한 과제가 하나 남아 있다. 기존 사용자를 블록체인 생태계로 유입시키는 것이다. 디앱은 소비자가 기존에 이용하던 플랫폼에서 누렸던 효용 이상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기존 앱을 떠나 디앱으로 올 이유가 없다. 소비자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달성해야 할 부분은 블록체인 플랫폼의 고질적인 속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또 콘텐츠의 다양성, 사용자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UI/UX) 등 사용자 만족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 블록체인 기술로 소비자 이익 증대시켜야
그리하여 연세대 블록체인 연구회는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 참가자의 서로 다른 동기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유통업자는 수익을 극대화하기를 원할 것이며, 콘텐츠 생산자는 자신의 콘텐츠가 소비자들에게 많이 노출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는 질 좋은 콘텐츠를 저렴하고 쉽게 이용하고자 할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고려할 사항은 플랫폼 산업 자체의 특성상 절대 다수의 참가자, 즉 소비자의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콘텐츠 산업에서 블록체인이 자리 잡으려면 어떠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좋을지 고민해 보았다.
첫째,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소비자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 꼭 소비자만을 위한 프로젝트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많은 참가자, 즉 소비자들이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하려면 비(非)블록체인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이점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적용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보아야 한다. 알다시피 블록체인에 정보를 저장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상당히 비싸다. 블록체인의 기술적인 특성이 아니라 단지 블록체인을 위한 블록체인 플랫폼은 높은 비용 부담으로 순수익만 악화시킬지도 모른다.
셋째, 기술적인 상용화 및 유지가 가능해야 한다. 소비자는 블록체인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편안한 콘텐츠 감상을 위해서 플랫폼을 이용한다. 블록체인을 적용한 플랫폼을 출범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편안한 재생 환경을 꾸준히 유지할 수 없다면 소비자는 언제든 떠나갈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도 어떤 유통업자가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선도자(First-mover)가 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한다. 콘텐츠 산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 유통업자는 막대한 기술 자금 및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를 대거 유입시킬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넷플릭스나 멜론과 같은 기존 강자를 이길 킬러 디앱(Killer Dapp)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블록체인이 기존 엔터테인먼트 및 콘텐츠 산업구조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Changer)가 될 수 있을 때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 기술 투자 및 수용적인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가까운 미래에 정부가 블록체인을 올바로 규제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꾸준한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갖춘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연세대 블록체인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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